그리스·로마에서 중세 이슬람까지, 마사지는 어떻게 이어졌을까?
고대 그리스·로마에서 몸을 문지르는 일은 목욕과 운동에 붙어 있는 일상이었습니다. 목욕 전후나 운동 전후에 몸에 오일을 바르고 문질렀고, 목욕 시설이 곧 몸을 관리하는 장소였습니다.
2세기 로마에서 활동한 의사 갈레노스는 건강 관리를 다룬 저술에서 문지르기를 강도와 시간에 따라 나누어 설명했습니다. 문지르기가 막연한 습관이 아니라 의사가 구분해서 다루는 기술로 기록된 셈입니다.
그리스·로마의 의학 문헌은 중세 이슬람권에서 아랍어로 번역되어 받아들여졌고, 11세기 이븐 시나의 『의학정전』은 문지르기의 종류와 쓰임을 다루었습니다. 이 책은 뒤에 라틴어로 번역되어 유럽 대학에서 오래 교재로 쓰였습니다.
흔히 "중세 유럽에서 마사지가 사라졌다가 르네상스에 부활했다"고 하지만, 그렇게 뚜렷이 끊긴 것은 아닙니다. 고대 의학서가 다시 읽히면서 마찰과 운동에 대한 의학적 관심은 계속 이어졌고, 16세기 프랑스 외과의 앙브루아즈 파레의 저술에도 마찰을 이용한 처치가 등장합니다.
동아시아에서 안마는 어떻게 제도가 됐을까?
중국에서는 안마가 일찍부터 의학의 한 분야로 다뤄졌고, 당나라에 이르러 국가 의료 기관 안에 자리를 얻었습니다. 의료를 맡은 관청인 태의서에 안마박사·안마사·안마공·안마생이 배치되었습니다.
여기서 박사(博士)는 오늘날의 학위가 아니라 학생을 가르치는 관직입니다. 안마박사가 안마생을 가르치는 구조였으니, 안마를 가르치고 배우는 교육 과정이 제도 안에 있었다는 뜻입니다. "당나라에 마사지 전문의가 있었다"고 옮기면 뜻이 달라집니다.
이 제도는 일본으로 건너가 8세기 율령의 의료 기관에도 안마 관련 직책이 두어졌습니다. 이후 일본의 안마는 자체적으로 변해 갔고, 본격적으로 퍼진 것은 에도 시대입니다. 이 무렵 안마를 정리한 책들이 나왔고, 시력이 없어도 할 수 있는 일이라 시각장애인의 주요 생업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습니다.
다만 고대의 안마 직책과 에도 시대 시각장애인의 직업 문화는 시대가 크게 다릅니다. 안마가 처음부터 시각장애인의 일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근대 유럽에서 마사지는 어떻게 체계화됐을까?
19세기 초 스웨덴의 페르 헨리크 링은 체조와 운동으로 몸을 다루는 스웨덴식 의료체조를 체계화했고, 1813년 스톡홀름에 체조 교육 기관을 세웠습니다. 링의 체계에도 수기가 들어 있었지만 중심은 운동이었고, 마사지는 그 일부였습니다.
마사지를 독립된 치료법으로 정리한 쪽은 네덜란드 의사 요한 메츠거입니다. 그는 1868년 발목 염좌를 문지르기로 다룬 논문으로 의학 학위를 받았고, 이후 마사지를 의학계에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오늘날 쓰이는 에플러라주(쓸기)·페트리사주(주무르기)·프릭션(마찰)·타포트망(두드리기) 같은 프랑스어 동작 이름도 메츠거의 방법이 퍼지는 과정에서 자리 잡았습니다. 두 사람의 방법이 섞여 알려지면서 '스웨디시'라는 이름을 둘러싼 오해도 생겼는데, 이름의 유래는 스웨디시 마사지 문서에서 따로 다룹니다.
영국에서는 1894년 간호사 네 명이 마사지 종사자 단체를 만들어 교육과 시험, 직업 기준을 세웠습니다. 당시 마사지를 내세운 퇴폐 업소가 사회 문제가 되자, 정식 교육을 받은 종사자를 구분하려는 움직임이었습니다. 이 단체는 1920년 왕실 인가를 받았고, 1944년 이름을 '공인물리치료협회'로 바꾸었습니다.
이름이 바뀐 과정이 보여 주듯, 20세기 들어 마사지는 의료체조, 전기치료 같은 여러 신체 치료법과 함께 물리치료라는 전문 분야 안으로 점차 통합되었습니다. 어느 한 시점에 편입된 것이 아니라 수십 년에 걸친 변화입니다.
한국에서 마사지는 어떻게 자리 잡았을까?
한국의 흐름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에서 안마가 들어왔다"로 요약되곤 하지만, 정확하지 않습니다. 안마라는 말과 방법은 그 전부터 한국 의서에 있었고, 근대에 새로 생긴 것은 직업교육과 자격 제도입니다.
- 1610년 완성 · 1613년 간행 허준, 동의보감 몸을 누르고 문지르는 안마와 몸을 움직이는 도인을 묶은 안마도인(按摩導引)이 양생법의 하나로 실려 있다.
- 1890년대 근대 시각장애인 교육의 시작 선교 의사 로제타 셔우드 홀이 평양에서 점자를 이용한 시각장애인 교육을 시작했다. 안마 교육과는 별개의 일이다.
- 1913년 제생원 맹아부 설치 조선총독부가 세운 관립 기관에서 시각장애인 직업교육으로 안마와 침·뜸을 가르쳤다.
- 1914년 안마·침·뜸 영업 규칙 시행 안마를 업으로 하려면 면허를 받도록 하는 규칙이 생겼고, 제생원 졸업생들이 이 면허를 받았다.
- 해방 이후 ~ 1973년 안마사 제도의 재편 해방 뒤 제도가 흔들렸다가 1960년대 초 안마사 자격 제도가 다시 마련되었고, 1973년 의료법 개정으로 안마사 조항이 법률에 들어갔다.
두 흐름은 구분해서 봐야 합니다. 동의보감의 안마는 스스로 몸을 기르는 양생법이고, 근대의 안마는 교육과 면허로 관리되는 직업입니다. 같은 이름이라도 오늘날의 안마사 제도를 조선 의서에서 곧바로 이어 오는 것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일제강점기의 정책이 근대 직업교육과 자격 제도를 만드는 데 큰 영향을 준 것은 맞지만, 당시 시각장애인의 직업 가운데 안마가 얼마나 비중을 차지했는지는 시기마다 달랐습니다. 안마사 자격의 요건과 이를 둘러싼 논쟁은 법률·제도 문서에서 다룹니다.
오늘날 한국의 마사지는 이 안마의 흐름만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타이·스웨디시·아로마·스포츠 마사지처럼 다른 계보를 가진 외래 종목이 들어와 함께 자리 잡으면서, 하나의 뿌리로 묶기 어려운 지금의 모습이 되었습니다.